10共國2-04-01 • 國語의 變化
■ 10共國2-04-01: 過去 및 現在의 國語生活에 나타나는 國語의 變化를 理解하고 國語文化 發展에 參與한다.
言語의 變化
言語에는 서로 어긋나 보이는 두 性質이 있습니다. 하나는 社會性입니다. 말은 그 言語를 쓰는 사람들 사이의 약속이므로 개인이 마음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오늘 혼자 '책'을 '풱'이라 부르기로 해도 아무에게도 통하지 않습니다. 다른 하나는 歷史性입니다. 그런데도 言語는 實際로 계속 바뀝니다. 15世紀의 '어리다'는 '어리석다'였고 지금은 '나이가 적다'입니다.
이 둘은 矛盾이 아닙니다. 작동하는 時間의 單位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社會性은 지금 이 순간의 言語, 곧 共時態에 適用되는 性質이고, 歷史性은 世代를 넘어 쌓인 言語, 곧 通時態에서 觀察되는 性質입니다. 어느 한 世代가 회의를 열어 '이제부터 아래아를 없앱시다' 하고 決定한 적은 없습니다. 個人의 작은 發音 흔들림이 周邊으로 퍼지고, 그 狀態로 다음 世代가 말을 배우고, 그 世代가 다시 조금 더 밀어붙이는 過程이 數 百 秊 쌓여 結果만 남았습니다.
이 構造에는 重要한 含意가 있습니다. 進行 중인 變化는 언제나 '틀린 말'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變化가 完了되어 모두가 그렇게 쓰게 되면 그때는 이미 規範이 되어 있고, 變化의 中間 段階에서는 옛 形式과 새 形式이 함께 쓰이면서 새 形式이 誤用으로 取扱됩니다. 오늘 우리가 自然스럽게 쓰는 '물'도 17世紀에는 '믈'을 밀어내던 새로운 發音이었습니다.
國語의 變化는 音韻, 文法, 語彙, 意味의 네 層位에서 일어납니다. 네 層位는 속도가 크게 다릅니다. 가장 빠른 것은 語彙입니다. 새말은 하루에도 여럿 생기고 大部分 몇 달 만에 사라집니다. 가장 느린 것은 文法입니다. 주격 助詞 '가' 하나가 國語에 자리 잡는 데 數 百 秊이 걸렸습니다.
속도 差異에는 理由가 있습니다. 語彙는 목록입니다. 목록은 항목을 하나 넣거나 빼도 나머지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반면 音韻과 文法은 體系입니다. 體系에서는 하나가 바뀌면 周邊이 함께 調整되어야 합니다. 뒤에서 볼 아래아 'ㆍ'의 消失이 母音調和까지 무너뜨린 것이 代表的인 例입니다. 單語 하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母音 體系의 한 축이 빠진 事件이었기 때문입니다.
音韻 變化의 基本 동력은 調音의 經濟性입니다. 사람은 되도록 힘을 덜 들여 發音하려 합니다. 순음 'ㅁ, ㅂ, ㅍ' 뒤에서 입술을 폈다가 다시 오므리는 대신 그냥 오므린 채로 두면 '믈'이 '물'이 됩니다. 그런데 經濟性만 작동하면 말은 결국 뭉개져 알아들을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반대편에서 듣는 사람 쪽의 要求, 곧 明瞭性이 對抗합니다. 主格 助詞 '가'의 登場은 明瞭性 쪽이 이긴 事例입니다.
文法과 語彙 쪽에서는 類推가 강하게 작용합니다. 類推는 多數의 規則을 少數의 例外에 밀어붙이는 힘입니다. '아름답다, 아름다워'처럼 活用하는 單語가 많으니 '가깝다'도 그렇게 되고, 결국 不規則이 줄어듭니다. 여기에 言語 接觸과 社會的 要因이 더해집니다. 借用語는 接觸의 結果이고, 어떤 말套가 세련되게 評價되면 그쪽으로 變化가 쏠립니다.
國語史의 時代 구분
| 時代 | 時期 | 남아 있는 資料 | 여기서 나누는 理由 |
|---|---|---|---|
| 古代 國語 | ~10世紀 | 鄕札·吏讀, 『三國史記』·『三國遺事』의 地名과 人名 | 漢字를 빌려 적은 資料뿐이라 音을 直接 볼 수 없음 |
| 前期 中世 國語 | 10~14世紀 | 『鷄林類事』, 『鄕藥救急方』, 釋讀 口訣 資料 | 中心地가 慶州에서 開京으로 옮겨 中央語가 바뀜 |
| 後期 中世 國語 | 15~16世紀 | 『訓民正音』, 『龍飛御天歌』, 『釋譜詳節』, 『杜詩諺解』 | 表音 文字 記錄이 생겨 音韻과 聲調까지 確認 可能 |
| 近代 國語 | 17~19世紀 | 『捷解新語』, 諺簡, 한글 小說, 佛經 重刊本 | 聲調 消失, 아래아 語頭 消失, 口蓋音化 등 큰 變化가 마무리됨 |
| 現代 國語 | 20世紀 이후 | 新聞, 한글 마춤법 統一案, 辭典 | 標準語와 表記 規範이 制定되어 國家 水準의 基準이 생김 |
이 區分이 두 基準을 섞어 쓰고 있다는 점을 보아야 합니다. 앞쪽 境界는 主로 資料와 政治 中心地의 移動으로 그었고, 뒤쪽 境界는 言語 內部의 變化로 그었습니다. 그래서 秊代가 書冊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특히 注意할 것은 訓民正音 創製, 곧 1443秊의 位置입니다. 이 해를 後期 中世 國語의 시작으로 잡지만, 1443秊에 國語가 바뀐 것이 아닌, 그때부터 國語를 直接 볼 수 있게 되었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壬辰倭亂을 近代 國語의 起點처럼 쓰는 敍述도 戰爭이 言語를 바꾸었다는 뜻이 아니라, 戰亂으로 文獻이 끊겼다가 다시 나오는 時點이 便宜상 基準이 되는 것입니다.
古代 國語를 復元하기 어려운 理由도 같은 脈絡입니다. 鄕札은 漢字의 音과 訓을 빌려 國語를 적은 方式인데, 漢字는 表意 文字라 소리를 精密하게 적기에 不適合합니다. 그래서 古代 國語의 母音이 몇 개였는지 같은 問題는 推定의 領域에 남아 있습니다.
音韻의 變化
子音
後期 中世 國語에는 지금 쓰지 않는 글자가 여럿 있었습니다. 'ㅸ'(脣輕音 비읍), 'ㅿ'(半齒音), 'ㆆ'(여린히읗), 'ㆁ'(옛이응)이 代表的입니다. 이 가운데 'ㅸ'와 'ㅿ'는 實際 소리를 적은 글자였고, 15世紀 중엽에서 16世紀 사이에 차례로 사라졌습니다.
이 消失은 지금 國語에 化石으로 남아 '곱다'가 '고와'로, '돕다'가 '도와'로 活用하는 이른바 'ㅂ' 不規則은 中世의 'ㅸ'가 반모음 'w'로 바뀐 結果입니다. '고ᄫᅡ'가 '고와'가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짓다'가 '지어'가 되는 'ㅅ' 不規則은 'ㅿ'의 消失 때문에 생깁니다.
또한 語頭 子音群도 사라졌습니다. 15世紀에는 'ᄠᅳᆮ(뜻)', 'ᄡᆞᆯ(쌀)', 'ᄢᅴ(때)'처럼 單語 첫머리에 子音이 둘 이상 오는 表記가 있었고, 이 表記가 實際 發音이었다는 見解가 널리 받아들여집니다. 이들은 近代에 된소리로 바뀌었습니다. 그 痕迹이 複合語에 남아 있습니다. '좁쌀, 볍씨, 입쌀, 햅쌀'의 'ㅂ'은 뒤에 오던 'ᄡᆞᆯ'의 첫 子音입니다. '조+ᄡᆞᆯ'이 '좁쌀'이 된 것이지, '조'에 理由 없이 'ㅂ'이 끼어든 것이 아닙니다. '입때, 접때'의 'ㅂ'도 같은 出處입니다.
아래아 'ㆍ'
15世紀 國語의 單母音은 'ㅏ, ㅓ, ㅗ, ㅜ, ㅡ, ㅣ, ㆍ'의 일곱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ㆍ'가 사라지면서 現代의 體系로 넘어옵니다. 注意할 것은 이 消失이 한 번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먼저 16世紀에 非語頭, 곧 둘째 音節 이하의 'ㆍ'가 'ㅡ'로 바뀌었습니다. 'ᄆᆞᅀᆞᆷ'이 '마음'으로 가는 中間에 'ᄆᆞ음'을 거치고, 'ᄀᆞᄅᆞᆺ'이 '가루'로 가는 過程이 여기 해당합니다. 그다음 18世紀에 語頭의 'ㆍ'가 'ㅏ'로 바뀌었습니다. 'ᄆᆞᆯ'이 '말'이 되고 'ᄒᆞ다'가 '하다'가 된 것이 이 段階입니다. 그래서 '第1段階는 非語頭에서 'ㅡ'로, 第2段階는 語頭에서 'ㅏ'로'라는 對應을 記憶해 두면 中世 語形과 現代 語形을 맞춰 볼 수 있습니다.
이 消失은 單語 몇 개의 模樣이 바뀌는 水準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ㆍ'는 中世 母音 體系의 한 축이었으므로, 그것이 빠지자 母音調和 全體가 함께 흔들렸습니다. 이 波及은 따로 볼 만큼 큽니다.
한 가지 더 짚을 것은 소리와 表記의 時差입니다. 'ㆍ'는 18世紀에 소리로서 消滅했지만 글자는 1933秊 한글 마춤법 統一案까지 慣性으로 쓰였습니다.
母音調和
中世 國語의 일곱 母音은 세 부류로 나뉘었습니다. 陽性 母音 'ㆍ, ㅏ, ㅗ', 陰性 母音 'ㅡ, ㅓ, ㅜ', 그리고 어느 쪽과도 어울리는 中性 母音 'ㅣ'입니다. 같은 부류끼리 모이려는 이 傾向은 單語 안에서도 작동했고, 助詞와 語尾를 고르는 자리에서도 작동했습니다.
| 붙는 자리 | 陽性 母音 뒤 | 陰性 母音 뒤 | 現代에 남은 모습과 그 事情 |
|---|---|---|---|
| 目的格 助詞 | ᄋᆞᆯ/ᄅᆞᆯ | 을/를 | '을/를'로 統合. 選擇 基準이 母音의 부류에서 앞말의 받침 有無로 바뀜 |
| 補助詞 | ᄋᆞᆫ/ᄂᆞᆫ | 은/는 | '은/는'으로 統合. 事情은 위와 같음 |
| 冠形格 助詞 | ᄋᆡ | 의 | '의' 하나로 統合 |
| 連結 語尾 | -아 | -어 | 유일하게 對立이 남았으나 陽性 목록이 'ㅏ, ㅗ'로 줄어듦 |
中世 國語에서 '나를'은 '나ᄅᆞᆯ', '너를'은 '너를'이었습니다. 같은 目的格 助詞인데 앞 母音이 陽性이냐 陰性이냐에 따라 模樣이 갈렸습니다.
무너진 經路는 앞 節의 變化와 곧바로 이어집니다. 助詞와 語尾가 붙는 자리는 언제나 둘째 音節 이하입니다. 16世紀에 非語頭의 'ㆍ'가 'ㅡ'로 바뀌자 'ᄋᆞᆯ'은 '을'이 되고 'ᄋᆞᆫ'은 '은'이 되어 陰性 形態와 區別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고를 것이 남지 않으면 選擇 規則도 사라집니다. 그 뒤 '을/를'과 '은/는'의 區別은 받침이 있느냐 없느냐라는 다른 基準으로 다시 짜였습니다. 母音調和가 單純히 없어진 것이 아니라, 이형태를 고르는 基準 自體가 交替된 것입니다.
現代에 남은 것들 가운데 하나는 '-아/-어' 語尾인데, 語幹 끝 音節의 母音이 'ㅏ, ㅗ'일 때만 '-아'를 쓰므로 中世보다 陽性 쪽이 좁아졌습니다. 다른 하나는 象徵語입니다. '알록달록'과 '얼룩덜룩', '찰랑찰랑'과 '철렁철렁'처럼 母音만 바꾸어 어감을 조절하는 裝置로 남아 있습니다.
規範도 이 붕괴를 追認했습니다. 「標準語 規定」 第8項은 陽性 母音이 陰性 母音으로 바뀌어 굳어진 單語는 바뀐 쪽을 標準語로 삼는다고 規定합니다. '깡충깡충', '오뚝이', '주추', '-둥이'가 그 例입니다. 다만 같은 條項은 語源 意識이 뚜렷한 '扶助, 査頓, 三寸'에는 陽性 形態를 그대로 두었습니다.
聲調
中世 國語에는 聲調가 있었습니다. 文獻에서는 글자 왼쪽에 傍點을 찍어 表示했습니다. 點이 없으면 平聲(낮은 소리), 點이 하나면 去聲(높은 소리), 點이 둘이면 上聲(낮다가 높아지는 소리)입니다.
核心은 上聲의 性格입니다. 上聲은 平聲과 去聲이 한 音節에 겹친 소리로 解釋됩니다. 낮은 데서 높은 데로 올라가려면 時間이 걸리므로 上聲은 自然히 길게 發音되었습니다. 16世紀 말에 聲調 體系가 무너질 때 높낮이는 사라지고 이 길이만 남았습니다. 現代 國語의 長音은 大體로 中世 上聲의 후신입니다. '눈雪'이 길고 '눈眼'이 짧은 區別이 여기서 나옵니다. 東南 方言에 聲調가 남아 있는 것은 中央語에서 일어난 變化가 全 地域에 同時에 미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近代의 連鎖的 變化
| 變化 | 條件 | 例 | 例外와 그 理由 |
|---|---|---|---|
| 口蓋音化 | 'ㄷ, ㅌ'이 'ㅣ, ㅑ, ㅕ' 앞에서 'ㅈ, ㅊ'으로 | 디다>지다, 텬디>천지, 됴타>좋다 | 잔디, 느티나무, 마디, 어디 — 當時 語形이 '잔듸, 느틔, 마듸, 어듸'여서 條件에 들지 않았음 |
| 圓脣母音化 | 'ㅁ, ㅂ, ㅍ' 뒤의 'ㅡ'가 'ㅜ'로 | 믈>물, 블>불, 플>풀, 스믈>스물 | 입술을 오므린 채로 두는 편이 힘이 덜 들기 때문에 순음 뒤에서만 일어남 |
| 前舌母音化 | 'ㅅ, ㅈ, ㅊ' 뒤의 'ㅡ'가 'ㅣ'로 | 아츰>아침, 즛>짓, 슳다>싫다, 츩>칡 | 혀끝을 앞에 둔 子音 뒤에서 母音도 앞으로 끌려감 |
| 'ㅣ' 母音 逆行 同化 | 뒤 音節의 'ㅣ'가 앞 母音을 앞쪽으로 당김 | 아기>애기, 어미>에미, 지팡이>지팽이 | 大部分 標準語로 認定되지 않음 — 規範이 變化를 막고 있는 事例 |
| 頭音 法則 | 語頭의 'ㄹ', 'ㅣ·ㅑ' 앞의 'ㄴ' 회피 | 로동>노동, 녀자>여자 | 北韓은 適用하지 않음 — 言語가 아니라 規範의 選擇 |
'잔디'는 現在 'ㄷ' 뒤에 'ㅣ'가 오는데도 口蓋音化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口蓋音化가 일어나던 17~18世紀에 이 單語는 '잔듸'였고, 母音이 'ㅢ'였으므로 條件에 該當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 'ㅢ'가 'ㅣ'로 바뀌었을 때는 口蓋音化가 이미 끝난 變化였습니다. 變化에는 有效 期間이 있고, 그 期間이 지나 條件을 갖춘 單語는 適用을 받지 않았습니다. '느티나무, 마디, 어디, 견디다'가 모두 같은 事情입니다.
이와 區別해야 할 것이 '밭이(바치)', '굳이(구지)'처럼 現在도 일어나는 口蓋音化입니다. 이쪽은 形態素와 形態素가 만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共時的 現象이고, 앞의 '디다>지다'는 單語 안에서 이미 끝난 通時的 變化입니다. 둘을 같은 것으로 묶어 설명하면 '잔디'는 왜 例外인지 답할 수 없게 됩니다. 한편 '밭+이랑'을 連結할 때 口蓋音化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뒤에 오는 '이랑'이 助詞가 아니라 實質 形態素이기 때문입니다.
固有語에는 본래 語頭에 'ㄹ'이 오지 않았고, 漢字語가 들어오면서 생긴 語頭의 'ㄹ'을 國語가 밀어낸 結果가 頭音 法則입니다. 北韓이 '로동신문'으로 적는 것은 北韓 사람들이 實際로 그렇게만 發音한다는 뜻이라기보다, 漢字 본래 音을 살려 적기로 規範을 定했다는 뜻입니다. 表記 規範과 實際 發音은 별개의 問題입니다.
文法의 變化
主格 助詞 '가'
中世 國語의 主格 助詞는 '이' 하나였습니다. 子音으로 끝나면 '이'(例: 사ᄅᆞ미), 母音으로 끝나면 'ㅣ'가 붙어 앞 母音과 어울리고(例: 부톄), 'ㅣ'나 반모음 'y'로 끝나면 아무것도 붙지 않았습니다(例: 불휘). '가'는 16世紀 諺簡 資料에서 例가 보이기 시작해 17世紀 이후 널리 퍼졌습니다. 처음 나타난 時點에 대해서는 硏究者마다 見解가 다르므로 '16世紀에 兆朕이 보이고 近代에 定着했다' 程度로 잡는 것이 安全합니다.
왜 생겼는지가 重要합니다. 母音으로 끝나는 體言 뒤에서 主格 表示가 앞 音節에 녹아들거나 아예 드러나지 않으면, 듣는 사람이 主語를 把握하기 어렵습니다. 明瞭性을 回復하려는 壓力이 母音 뒤에 쓸 새 形態를 불러온 것입니다. 結果로 現代 國語는 子音 뒤 '이', 母音 뒤 '가'라는 깔끔한 分業을 갖게 되었습니다.
冠形格 助詞 'ㅅ'
中世 國語의 冠形格 助詞는 '의/ᄋᆡ'와 'ㅅ'의 두 계열이었습니다. 둘을 가르는 基準은 앞말이 무엇이냐였습니다. 사람이나 動物처럼 有情物이면서 높이지 않아도 되는 對象에는 '의/ᄋᆡ'를 썼고, 無情物이거나 높여야 할 對象에는 'ㅅ'을 썼습니다. '의'와 'ᄋᆡ' 가운데 어느 쪽을 쓸지는 앞서 본 母音調和가 決定했습니다. '사ᄉᆞᄆᆡ'(사슴의)와 '거부븨'(거북의)가 그 例입니다.
이 規則을 알면 앞에서 인용한 文章이 달리 보입니다. '나랏 말ᄊᆞ미'의 'ㅅ'은 사잇소리를 적은 것이 아니라 冠形格 助詞입니다. '나라'가 無情物이기 때문에 'ㅅ'을 골랐고, 따라서 이 句는 '나라의 말이'로 옮겨야 합니다. '부텻 말'(釋迦의 말)에 'ㅅ'이 쓰인 것은 다른 理由입니다. 釋迦는 有情物이지만 높여야 할 對象이므로 '의'를 쓸 수 없었습니다. 中世 國語의 尊待는 敍述語의 語尾뿐 아니라 冠形格 助詞를 고르는 데까지 反映되어 있었습니다.
現代 國語에는 이 對立이 없습니다. 冠形格은 '의' 하나로 統合되었고, 밀려난 'ㅅ'은 助詞의 資格을 잃은 채 合成語 사이의 사이시옷으로만 남았습니다.
ㄱ 終聲 體言, ㅎ 終聲 體言
中世 國語에는 助詞에 따라 形態가 달라지는 體言이 있었습니다. ㄱ 終聲 體言인 '나모'(나무)는 홀로 쓰이거나 子音으로 시작하는 助詞 앞에서는 '나모'였지만, 母音으로 시작하는 助詞 앞에서는 '남ㄱ-'으로 바뀌어 '남기, 남ᄀᆞᆯ, 남ᄀᆞ로'가 되었습니다. '구무'(구멍)가 '굼기'가 되는 것도 같은 部類입니다.
이런 體言은 近代로 오면서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消滅시킨 힘은 앞에서 본 類推입니다. 國語의 體言 大多數는 어떤 助詞가 붙어도 模樣이 그대로인데, 소수의 例外가 多數의 規則 쪽으로 끌려간 것입니다. 現代의 '나무, 구멍'은 두 形態 가운데 홀로 쓰이던 쪽으로 平準化된 結果입니다.
終聲에 'ㅎ'을 지닌 ㅎ 終聲 體言도 있었고, '돓(돌), 나랗(나라), 않(안), 웋(위), 갏(칼), 하ᄂᆞᆶ(하늘), ᄯᅡㅎ(땅)'처럼 80여 개가 確認됩니다.
近代에 이 'ㅎ'도 脫落했지만, 合成語 안에 굳은 것들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안ㅎ+밖'이 '안팎'이 되고, '살ㅎ+고기'가 '살코기'가 되고, '수ㅎ+닭'이 '수탉', '암ㅎ+개'가 '암캐'가 된 것이 그 結果입니다. '수탉'의 거센소리를 發音하기 편해서 생긴 것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 자리에 있던 'ㅎ'이 뒤 子音과 합쳐진 痕迹입니다. 「標準語 規定」 第7項은 수컷을 이르는 接頭辭를 '수-'로 統一하면서도 '수캐, 수탉, 수퇘지, 수평아리' 같은 單語에서는 거센소리 形態를 認定했습니다.
높임법
中世 國語의 높임법은 셋으로 나뉘었습니다. 主體 높임 '-시-', 客體 높임 '-ᅀᆞᆸ-/-ᄉᆞᆸ-/-ᄌᆞᆸ-', 相對 높임 '-이-/-ᅌᅵ-'입니다. 이 가운데 客體 높임은 目的語나 副詞語가 가리키는 對象을 높이는 裝置로, 現代 國語에는 '드리다, 모시다, 뵙다, 여쭙다' 같은 몇몇 語彙로만 남았습니다.
이 形態는 近代로 오면서 客體를 높이는 機能을 잃고, 말하는 이가 듣는 이에게 자기를 낮추는 機能으로 再分析되었습니다. 'ᄒᆞᄉᆞᆸᄂᆞ이다'가 여러 段階를 거쳐 '합니다'가 되는 過程이 그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쓰는 '합니다'의 '습'은 歷史的으로 客體 높임 先語末 語尾의 후신이지만, 現在는 客體를 조금도 높이지 않습니다. 形態는 남고 機能만 바뀌는 이런 現象을 文法化의 한 樣相으로 봅니다.
時制 體系
中世 國語에는 現代와 같은 過去 時制 語尾 '-았-/-었-'이 없었습니다. 現在는 '-ᄂᆞ-', 回想은 '-더-'로 表示했고, 過去는 아무 表示 없이 動詞 語幹만으로 나타내는 境遇가 많았습니다.
'-았-'은 '-아 잇-'이 줄어서 생겼습니다. '앉아 잇다'가 '앉앳다'를 거쳐 '앉았다'가 되는 經路입니다. 본래 '어떤 動作을 하고 그 狀態로 있다'는 意味였던 構成이 縮約되면서 過去를 나타내는 語尾로 굳었습니다. 現代 國語의 '앉았다'가 過去로도 解釋되고 '지금 앉아 있는 狀態'로도 解釋되는 것은 이 出身 成分 때문입니다. '-겠-'도 '-게 ᄒᆞ엿-'에서 나와 18世紀 무렵 자리를 잡았습니다.
疑問法과 方言
中世 國語는 疑問文을 두 갈래로 區別했습니다. '예/아니요'로 답하는 判定 疑問文에는 'ㅏ' 계열 語尾('-가, -아, -녀')를, 具體的 內容을 묻는 說明 疑問文에는 'ㅗ' 계열 語尾('-고, -오, -뇨')를 썼습니다. 疑問詞가 있으면 'ㅗ' 계열, 없으면 'ㅏ' 계열이라는 規則입니다.
中央語에서는 이 區別이 사라졌지만 東南 方言에는 살아 있습니다. "밥 뭇나?"는 判定 疑問이고 "머 뭇노?"는 說明 疑問입니다. 方言을 中央語가 잘못 변한 形態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는 方言이 옛 體系를 保存하고 中央語가 그것을 잃은 쪽입니다. 方言은 國語史의 證據 資料이고, 方言이 사라지면 그만큼 國語의 歷史를 復元할 단서가 줄어듭니다.
이 밖에 中世에 널리 쓰이던 先語末 語尾 '-오-/-우-'는 16世紀에 사라졌고, 名詞形 語尾는 '-옴/-움'에서 '-기' 쪽으로 무게가 옮겨 갔습니다. 比較를 나타내던 副詞格 助詞 '에'도 現代에는 '보다'로 代替되었습니다. 다음 文章의 '中國에'가 그 用法입니다.
나랏 말ᄊᆞ미 中國에 달아 文字와로 서르 ᄉᆞᄆᆞᆺ디 아니홀ᄊᆡ
— 「訓民正音」 諺解本 御製 序文(15世紀)
지금 國語로 옮기면 '우리나라 말이 中國과 달라 漢字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입니다. '中國에 달아'를 '中國에서 달라'로 읽으면 뜻이 어긋납니다. 여기서 '에'는 比較의 對象을 나타내며, 現代 國語의 '보다'에 該當합니다.
語彙와 意味의 變化
中世 國語에는 現在 쓰지 않는 固有語가 많았습니다. '즈믄'(千), '온'(百), '가람'(江), '뫼'(山), '미르'(龍), '아ᅀᆞ'(弟)가 그렇습니다. 이들이 漢字語에 밀려난 것은 語彙가 單獨으로 競爭해서가 아니라, 文書와 行政과 學問이 모두 漢文으로 이루어지던 條件 때문입니다. 힘 있는 領域에서 쓰이는 語彙가 日常으로 내려옵니다. 오늘 情報 技術 分野의 英語가 國語로 내려오는 構造와 같습니다.
借用은 時期마다 經路가 달랐습니다. 三國 時代 이래의 漢字語가 가장 두꺼운 層을 이루고, 高麗 後期 元의 干涉기에는 蒙古語가 들어와 '수라, 보라매, 송골매' 같은 語彙를 남겼습니다. 19世紀 말 이후에는 日本을 거친 飜譯 漢字語가 대량으로 들어왔습니다. '社會, 個人, 自由, 哲學, 演說, 經濟'가 그런 單語입니다. 특히 '經濟'는 본래 經世濟民의 줄임말이었는데 英語 economy의 飜譯語로 轉用되면서 뜻이 바뀌었습니다. 漢字語라고 해서 모두 中國에서 온 오래된 말이 아니라는 事實을 보여 줍니다. 20世紀 이후로는 英語 借用이 壓倒的입니다.
意味 變化의 類型
| 類型 | 單語 | 옛 뜻 → 지금 뜻 | 變化가 일어난 事情 |
|---|---|---|---|
| 擴大 | 겨레 | 宗親, 친척 → 民族 全體 | 近代 民族 意識이 형성되며 適用 範圍가 넓어짐 |
| 擴大 | 다리 | 사람·짐승의 다리 → 事物의 다리 | 비슷한 模樣과 機能에 같은 이름을 붙이는 比喩적 擴張 |
| 縮小 | 짐승 | 衆生, 살아 있는 것 全體 → 사람을 뺀 動物 | 佛敎 用語가 日常語로 내려오며 範圍가 좁아짐 |
| 縮小 | 얼굴 | 몸 全體의 形體 → 낯 | 身體 部位를 가리키는 다른 語彙들과 役割이 나뉨 |
| 移動 | 어리다 | 어리석다 → 나이가 적다 | 어리석음과 어림이 겹쳐 쓰이다가 한쪽으로 굳음 |
| 移動 | 어엿브다 | 불쌍하다 → 예쁘다 | 가엾이 여기는 感情이 好感으로 옮겨 감 |
| 移動 | 인정 | 뇌물, 선물 → 따뜻한 마음 | 官廳 慣行을 가리키던 말에서 感情어로 옮겨 감 |
| 下落 | 놈 | 남자를 가리키는 平常의 말 → 낮잡는 말 | 낮잡는 文脈에서 반복 使用되며 價値가 배어듦 |
| 下落 | 마누라 | 높여 부르던 말 → 낮추어 부르는 말 | 높임말이 흔해지면 높임의 힘이 닳음 |
이 표에서 注意할 것은 類型 자체가 아니라 類型이 나뉘는 基準입니다. 擴大와 縮小는 單語가 가리키는 對象의 範圍가 넓어졌는지 좁아졌는지를 봅니다. 移動은 範圍가 넓어지거나 좁아진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옮겨 간 境遇입니다. 價値의 上昇과 下落은 對象의 範圍가 아니라 單語에 묻은 評價가 달라진 境遇이므로, 앞의 세 類型과 층이 다릅니다. '놈'은 範圍로 보면 縮小이고 評價로 보면 下落입니다. 한 單語가 두 類型에 함께 걸릴 수 있습니다.
價値 下落이 上昇보다 훨씬 흔하다는 事實에도 理由가 있습니다. 꺼리는 對象을 부드럽게 부르려고 婉曲語를 만들면, 그 婉曲語가 對象과 붙어 버려 다시 껄끄러워지고, 그러면 또 새 婉曲語를 만들게 됩니다. '뒷간'에서 '변소'로, 다시 '화장실'로 옮겨 온 經路가 그렇습니다. 語彙를 바꾸어도 對象에 대한 社會의 態度가 그대로면 새 語彙에 같은 評價가 다시 쌓입니다. 뒤에서 볼 差別 表現 問題를 語彙 交替만으로 풀 수 없는 理由가 여기 있습니다.
表記法의 變化
이어적기, 거듭적기, 끊어적기
| 表記法 | 例 | 原理 | 주로 쓰인 時期 |
|---|---|---|---|
| 이어적기(連綴) | 사ᄅᆞ미, 기픈 | 소리 나는 대로 적음. 形態는 흐려짐 | 15~16世紀 |
| 거듭적기(重綴) | 사ᄅᆞᆷ미, 깁픈 | 앞뒤 兩쪽에 걸쳐 적음. 두 原理의 過渡期 | 16~17世紀 |
| 끊어적기(分綴) | 사람이, 깊은 | 形態를 고정해 적음. 意味 把握이 쉬움 | 근대 이후 확대, 1933秊 以後 原則 |
세 表記法은 國語 表記가 表音에서 表意로 옮겨 온 過程을 보여 줍니다. 이어적기는 들리는 대로 적으므로 쓰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꽃'이라는 하나의 形態가 助詞에 따라 '꼬치, 꼬츨, 꼳또'처럼 세 模樣으로 흩어지면 읽는 사람이 매번 單語를 再構成해야 합니다. 끊어적기는 쓰는 사람에게 負擔을 지우는 대신 읽는 사람의 負擔을 줄입니다. 거듭적기는 옛 方式을 버리지 못한 채 새 方式을 試圖한 中間 形態입니다.
竝書와 八終聲법
中世 表記에는 子音 글자를 나란히 쓰는 두 方式이 있었습니다. 같은 글자를 겹쳐 쓰는 各自 竝書('ㄲ, ㄸ, ㅃ, ㅆ, ㅉ, ㆅ')와 서로 다른 글자를 나란히 쓰는 合用 竝書('ㅳ, ㅄ, ㅶ, ㅺ, ㅼ, ㅽ, ㅴ, ㅵ')입니다. 語頭에 오는 合用 竝書가 앞에서 본 語頭 子音群이고, 이들이 近代에 된소리로 바뀌면서 表記도 各自 竝書 쪽으로 統合되었습니다. 지금 된소리를 'ㄲ, ㄸ, ㅃ, ㅆ, ㅉ' 다섯 가지로만 적는 것은 이 統合의 結果입니다.
15世紀에는 받침을 여덟 字로만 적는 八終聲법이 原則이었습니다.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ㆁ'만 받침에 쓰고, '곶'은 '곳'으로 '빛'은 '빗'으로 적었습니다. 이 또한 表音적 原則입니다. 다만 『龍飛御天歌』와 『月印千江之曲』에는 '곶, 깊고'처럼 形態를 살린 表記가 나타납니다. 表意적 表記에 대한 構想이 創製 무렵부터 있었다는 證據입니다.
東國正韻식 漢字音 表記
世宗과 世祖 때의 文獻에서 漢字 옆에 달린 音은 當時 사람들이 實際로 내던 소리가 아닙니다. 1448秊에 完成된 韻書 『東國正韻』이 定한, 中國 原音에 맞추어 바로잡은 理想적 漢字音입니다.
| 特徵 | 例 | 이렇게 적은 理由 |
|---|---|---|
| 終聲 채우기 | 世, 虛, 步 | 漢字音도 初聲·中聲·終聲을 갖추어야 한다는 原則. 받침이 없으면 'ㅇ'이나 'ㅱ'을 채움 |
| 以影補來 | 佛, 日 | 中國에서 入聲이던 漢字가 國語에서 'ㄹ'로 나므로, 'ㆆ'을 덧붙여 짧게 끊어 읽으라고 表示 |
| 全濁 字 使用 | 覃, 步, 邪 | 中國 聲母의 濁音을 各自 竝書로 對應시킴 |
以影補來라는 이름은 'ㆆ'을 나타내는 影 字로 'ㄹ'을 나타내는 來 字를 보충한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인용한 訓民正音 諺解本에서 '中國'에 '듕귁'이, '文字'에 '문ᄍᆞ'라는 音이 달린 것이 바로 이 方式입니다. 15世紀 사람들이 實際로 '듕귁'이라고 말했다고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읽어야 한다고 國家가 規定했을 뿐입니다.
이 表記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現實 漢字音과 差異가 커서 읽고 쓰기에 不便했고, 世祖 이후 文獻부터 現實 漢字音 表記가 늘어 16世紀에는 자취를 감춥니다. 國語史에서 規範이 現實을 이기지 못한 가장 이른 事例입니다. 뒤에서 볼 '자장면'과 '너무'의 事例는 五百 秊 뒤에 같은 構造가 반복된 것입니다.
表音과 表意의 折衷
第1項 한글 마춤법은 標準말을 그 소리대로 적되, 語法에 맞도록 함으로써 原則을 삼는다.
— 「한글 마춤법 統一案」(1933)의 취지
이 한 文章에 두 原理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소리대로 적되'는 表音주의이고 '語法에 맞도록'은 表意주의입니다. 現行 「한글 맞춤법」도 같은 構造를 이어받았습니다. 두 原理가 具體的 條項에서 어떻게 調節되는지는 10共國2-04-02에서 다루므로, 여기서는 現行 規範이 歷史的 選擇의 結果라는 事實만 확인해 둡니다.
進行 중인 變化
語彙의 變化
| 方式 | 例 | 이 方式이 늘어난 事情 |
|---|---|---|
| 合成 | 집콕, 손절, 확찐자 | 이미 있는 語根을 붙이므로 뜻이 透明하고 만들기 쉬움 |
| 派生 | 캠핑족, 등산러, 퇴근각, 꿀맛 | 外來 要素가 接辭처럼 굳어 生産性을 얻음 |
| 混成·切斷 | 치맥, 라볶이, 아아 | 文字 中心 對話에서 짧게 치는 便益이 큼 |
| 앞 글자 따기 | 별다줄, 갑분싸 | 같은 事情. 解讀에 集團 知識이 必要해 內部어가 됨 |
| 借用 | 스포일러, 밈, 테이크아웃 | 外國에서 槪念과 語彙가 함께 들어옴 |
| 意味 轉用 | 불타다(달아오르다), 고구마(답답함) | 새 形態 없이 기존 單語에 뜻을 얹어 經濟性이 높음 |
새말의 大部分은 정착하지 못하고 사라집니다. 國立國語院은 해마다 新語를 調査해 報告하는데, 몇 秊 뒤까지 살아남아 辭典에 오르는 語彙는 극히 一部입니다. 살아남는 語彙에는 共通點이 있습니다. 가리키는 對象이 持續되고, 形態가 짧고, 뜻이 透明합니다. '누리집'처럼 構造가 透明해도 對象을 부르는 다른 말이 이미 강하게 자리 잡고 있으면 밀립니다. 새말의 運命은 語彙 自體의 優劣만으로 決定되지 않습니다.
文法의 變化
지금 國語에서 가장 눈에 띄는 文法 變化는 높임 表現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커피 나오셨습니다", "그 商品은 品切이십니다" 같은 事物 尊待가 代表的입니다. 規範으로는 誤用입니다. '-시-'는 文章의 主體를 높이는 裝置인데 커피와 商品은 높임의 對象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誤用이 왜 이렇게 널리 퍼졌는지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말하는 이가 實際로 높이려는 對象은 商品이 아니라 듣는 顧客입니다. 높임의 對象이 主體에서 聽者로 옮겨 가려는 壓力이 文法과 부딪히면서 나타난 現象입니다. 앞서 본 '-ᅀᆞᆸ-'의 再分析도 出發은 이런 흔들림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表現을 批判할 때 '文法을 모른다'로 끝내면 事態의 절반만 보는 셈입니다. 다만 現在 規範으로는 誤用이라는 判斷은 有效하며, 試驗에서도 그렇게 處理됩니다.
語彙 쪽에서는 '너무'의 事例가 規範과 現實의 關係를 잘 보여 줍니다. '너무'는 오랫동안 否定的 文脈에만 쓰는 副詞로 規定되어 '너무 좋다'는 誤用이었습니다. 國立國語院은 2015秊에 뜻풀이를 고쳐 肯定的 文脈에서도 쓸 수 있게 했습니다. 規範이 現實을 바꾼 것이 아니라 現實이 規範을 바꾼 事例입니다.
規範의 變化
國語 規範은 國立國語院이 調査하고 國語審議會가 審議해 바꿉니다. 2011秊에 '짜장면, 먹거리, 손주, 남사스럽다' 등이 標準語로 追加 認定된 것이 잘 알려진 事例입니다. '자장면'만 標準語이던 時期가 數十 秊 이어졌고, 그동안 大部分의 사람은 '짜장면'이라고 發音했습니다.
이 事例에서 읽어야 할 것은 規範의 位置입니다. 規範은 言語를 設計하지 않습니다. 이미 일어난 變化 가운데 社會가 널리 받아들인 것을 뒤늦게 追認합니다. 그래서 規範과 現實 사이에는 언제나 시차가 있고, 그 시차 區間에서 사람들은 '틀린 말을 쓰고 있다'는 評價를 받습니다. 規範을 絶對시할 必要도, 無視할 必要도 없습니다. 規範은 公的 疏通의 基準을 提供하는 道具이고, 道具는 現實에 맞게 고쳐 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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